[시선뉴스 이시연 / 디자인 최지민]

▶ 그레이스 켈리 (Grace Kelly)
▶ 출생-사망 / 1929년 11월 12일 ~ 1982년 9월 14일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영화배우, 영부인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꾼 그레이스 켈리

메이저 스타 영화배우 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손꼽히는 그레이스 켈리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아버지와 독일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의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아버지 존 켈리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켈리는 고등학교에서 춤과 연기를 배웠으며 졸업책에 존경하는 배우로 잉그리드 버그먼과 조지프 코튼을 꼽기도 했다.

모델로 시작한 경력..할리우드까지 가다

모델로 시작한 그녀는 브로드웨이와 텔레비전에서 연기를 하다가 마침내 할리우드의 스릴러 ‘14시간(1951)’에서 단역을 맡게 되었다. 1년 후 그녀는 크게 히트한 서부극 ‘하이 눈’에서 게리 쿠퍼의 퀘이커 교도 아내로 출연했다. 이어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1954)’와 ‘이창(1954)’ 두 편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다. 그녀는 히치콕 감독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침착한 금발머리 미인에, 겉으로는 조신하지만 속으로는 뜨거운 열정이 이글거리는 캐릭터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

이후 ‘갈채(1954)’에서는 알코올 중독자 이자 과거 인기스타였지만 현재는 별 볼일 없는 가수 빙 크로스비의 헌신적인 아내 역할로 좋은 연기를 선보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때 히치콕 감독이 다시 한 번 그녀를 캐스팅했고, 영화 ‘나는 결백하다(1955)’에서 캐리 그랜트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극 중 저녁 내내 그랜트에게 차갑게 거리를 두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코앞에서 침실 문을 굳게 닫아 버리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세련되게 표현된 에로틱한 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20세기 패션의 아이콘

세련되고 우아한 외모를 자랑했던 그레이스는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다. “50년대 패션을 참고하고 싶다면 그레이스 켈리의 패션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패션은 50년대를 대표했다. 클래식한 느낌의 슬랙스부터 우아한 레이디 라이크 룩까지 적절히 소화했고, 영화에 등장한 그녀의 의상은 그녀의 이미지에 맞게 고급스러우면서도 단정하게 디자인 되었다. 헤어스타일은 물론 악세사리와 장갑까지 세련미가 돋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켈리하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녀의 스카프와 웨딩드레스이다. 우아하게 스카프를 흩날리며 운전하는 모습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으며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아직도 많은 여성들의 로망일뿐 아니라 연예인, 왕족 등 셀럽들도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따라하기도 했다.  

배우에서 영부인이 된 그레이스 켈리

영화 ‘나는 결백하다’를 끝으로 그녀는 모나코로 화보 촬영을 떠났다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바로 모나코의 공(모나코의 국가 원수는 왕이 아닌 공(公)이다)을 만난 것. 모나코 공 레니에 3세는 켈리가 모나코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녀를 왕궁으로 초대했다. 이후 레니에 3세는 12캐럿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등 지속적인 구애를 펼쳤고 켈리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불과 데뷔 5년만에 영화계에서 은퇴하게 됐다. 1956년 4월 18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는 무려 일주일 일정으로 세기의 결혼식을 치르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불행한 결혼생활과 불행한 죽음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지만 결혼 후 켈리는 누구보다 불행한 나날을 보냈다. 모나코에서는 프랑스어를 썼는데 켈리는 프랑스어를 잘 하지 못해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와도 사이가 좋지 못해 온갖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으며, 알고 보니 레니에 3세는 ‘모나코의 관광 산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스타 배우와 결혼하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연기생활을 포기한 켈리가 불러들인 홍보 효과는 미미했고 이에 레니에는 켈리가 나온 영화를 모나코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생활로 우울증에 시달린 켈리에게 1962년 그녀의 뮤즈 히치콕 감독이 또 다시 영화 출연을 제안해 왔지만 모나코 공비로서 품위를 떨어트린다는 이유로 모나코 언론과 국민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결국 그녀의 출연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나이 겨우 쉰둘이던 1982년에 비극이 찾아왔다. 산길을 달리다 자동차 충돌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그레이스 켈리, 비록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왕족’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그녀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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