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라! 미국의 복수 ‘넵튠 스피어 작전’ [지식용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라! 미국의 복수 ‘넵튠 스피어 작전’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이시연 수습기자
  • 승인 2019.12.2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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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시연 수습기자] 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건물이 무너졌다. 사건은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기의 테러로 인해 약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이에 미국은 주동자 색출에 나섰고 대대적인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데… 미 당국이 추적한 결과, 주동자는 아프가니스탄의 석유 재벌 ‘오사마 빈라덴.’

빈라덴 사살장면 지켜보는 오바마 대통령 [사진제공/ 연합뉴스]
빈라덴 사살장면 지켜보는 오바마 대통령 [사진제공/ 연합뉴스]

이후 미국은 9.11테러 주동자 ‘오사마 빈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인접국인 파키스탄을 설득해 영공 개방 등의 약속을 받아내고, 작전명을 '무한정의 작전'으로 명명한 뒤 보복전쟁에 들어가기도 했고, ‘아나콘다 작전’, ‘인피닛 리치 작전’ 등 수많은 작전을 수행해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애썼지만 번번이 눈앞에서 놓쳐 버리고 말았다.

거의 잡힐 뻔했던 빈 라덴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모든 유-무선 전화기의 사용을 끊었고 특히 ‘아나콘다 작전’ 이후부터는 내부 밀고자가 자신의 위치를 누설했다고 판단하고 병사들과 부하 간부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숨긴 채 잠적했다. 오직 중간 연락책을 이용해서 모든 명령을 전달하고 부하들에게 소식을 접할 뿐이었다.

이에 미국 CIA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잡혀있는 그의 부하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집중 심문을 시작했는데, 무자비한 고문과 비인격적인 과정 속에 진행되기는 했지만 고문을 견디지 못한 몇몇 알카에다 조직원들은 고급정보를 술술 털어놓고야 말았다.

2002년 말, 포로들에게 캐낸 정보를 취합해본 CIA조사관들은 빈 라덴의 중간 연락책 ‘알-쿠웨이트’라는 알카에다 간부의 신원을 파악하게 됐고 이후 2010년 알-쿠웨이트의 통화내역을 감청해 그의 위치 및 빈 라덴의 은신처를 파악했다.

빈 라덴의 은신처가 확인된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3월 14일 ‘빈 라덴 사살 작전’을 계획했다. 이때 작전명은 ‘넵튠 스피어, 이들이 작전 수행을 위해 계획한 시간은 단 30분.’

빈 라덴 저택에 폭격기를 침투시켜 정밀 폭격하는 방안과 무인기를 투입하여 정밀폭격 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지만 결국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특수부대 투입’이 결정됐다. 이후 해군 특수전 연구개발단 소속 대원 24명이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 빈 라덴 저택과 유사한 시설을 만들어 3주간 투입 훈련을 받았다. 

2011년 4월 28일 8시 20분. 오랜 훈련과 계획 끝에 오바마 대통령은 드디어 ‘넵튠 스피어 작전’ 실행을 명했고 기상악화로 5월 1일 오후 11시 46분 작전은 개시됐다. 작전팀이 탑승한 헬기는 파키스탄 대공레이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초저공비행을 실시했으며 달빛이 가려지는 곳으로만 골라서 비행했다.

이때쯤 우연이었는지 모를 갑작스런 정전사태에 마을 전체가 암흑으로 변했고 작전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대원들이 내리려던 찰나 엄청난 강풍에 헬기가 저택에 부딪히며 추락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된 소음으로 작전팀은 주택 내 거주자들이 이 상황을 눈치 채고 있을 거라 예상해 빠르게 진입했다.

CIA의 분석에 의하면 주택 내에는 총 4명의 남자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작전팀은 차례로 ‘알-쿠웨이트’, 알-쿠웨이트의 동생 ‘아브랄 알 쿠웨이트’, 빈라덴의 아들 ‘칼리드’ 그리고 마지막 ‘오사마 빈라덴’까지 모두 사살했다. 이후 빈 라덴의 시신은 미국으로 인양 후 DNA 비교검사를 통해 오사마 빈 라덴임이 최종 판명되자 간단한 장례식 절차 후 인도양에 수장됐다.

2001년 9.11 테러 사건을 직면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슬픔과 분노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미국 영토 한복판에서 공격을 받았으며 (우리의 부모, 형제, 자식, 친구들이 죽었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이런 뼈아픈 고통을 준 사람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앞에 맹세코 10년, 20년 혹은 100년이 지나더라도) 끝까지 우리의 원수를 추적하여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이곳은 미합중국이며 그 뒤에는 우리 미합중국의 군대가 있습니다.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 보이겠습니다.”  -2001년 9월, 조지 부시-

그리고 10년 뒤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러한 말을 남겼다.

“오늘 정의가 실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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