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전쟁 중인 나라에서 혹은 강도나 납치 등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질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전’의 지강헌 사건은 인질극이 생중계로 방영되면서 당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은 지강헌 일당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호의와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자수시키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동화되는 ‘리마 증후군’이 있다.

‘리마 증후군’은 인질범이 인질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이상 현상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반대 현상이다. 이 용어는 페루의 수도인 리마의 명칭을 딴 용어로 1996년에 리마에서 일어난 일본 대사관저 점거 인질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1996년 12월, 페루의 수도인 리마 소재 일본 대사관에 극좌 무장단체 투팍아마루 소속의 게릴라가 잠입해 대사관 직원 등을 인질로 잡았다. 14명의 게릴라는 1997년 4월까지 400여명의 인질들과 함께 지냈으며 그들은 127일의 시간 동안 점차 인질들에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타협에 불응 시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협박과 달리 실제로 인질들을 죽이지 않았으며 점차 인질들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 이외에도 인질들에게 미사 의식을 허용하고 의약품이나 의류를 반입하는 것까지 허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릴라들은 인질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놓기도 했다.

리마 증후군과 반대되는 개념인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고 따르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이다. 1973년 스톡홀름의 크레디트반켄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 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삼아 6일 동안 경찰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처음 벌어졌다.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공포감을 주면서도 가끔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그들과 동화되게 하여 그들을 사로잡았고 인질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며 인질범들과 애착 관계를 형성했다. 심지어 경찰이 인질들을 보호하고 증언을 요청해도 그들은 오히려 경찰을 적대시하며 인질범들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거부했고 인질범들을 옹호했다.

이러한 증후군들은 영화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영화 <강적>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리마 증후군이 뒤섞여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인질범과 인질은 48시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서로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인질과 인질범 사이의 동화 현상은 긴박한 순간 한 장소에 같이 있으면서 자신들의 처지나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인질극 상황에서 이런 심리 현상을 잘 이용한다면 소중한 한 생명을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