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이시연 수습기자 / 디자인 최지민]

▶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 출생-사망 / 1887년 11월 15일 ~ 1986년 3월 6일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화가

꽃을 통해 여성의 삶을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

생계를 위해 택한 미술교사의 길

조지아 오키프는 1887년 위스콘신 주 선 프레리 농장에서 태어났다. 오키프의 아버지는 농장을 경영하는 부농이었는데, 그 덕에 조지아 오키프는 어린 시절 한 달에 한번 선생을 모셔와 미술 과외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화가의 꿈을 품고 시카고 예술대학을 졸업한 오키프는 집안 가세가 기울자 수입이 불안정한 화가보다 생계를 보장해줄 직업을 찾아야 했다. 결국 조지아 오키프는 미술교사가 되었고 이후, 몇 년간, 미국의 서부지역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서부지역에서 얻은 예술적 영감

그녀가 교편을 잡았던 서부지역의 광활한 자연환경은 그녀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주었으며 이후 그녀의 그림 속에서 발현되었다. 교사생활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던 오키프는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미술계는 남성들의 독무대였고, ‘예쁜 것’을 그리는 것은 아마추어의 그림놀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서부의 외진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던 조지아 오키프에게 미국의 중심 미술 경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스티글리츠와의 만남

그러던 중, 오키프는 자신의 친구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당시 미국 현대 미술계 최고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에게 선보일 기회를 얻게 됐다. 스티글리츠는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보자마자 ‘이제야 제대로 된 여류화가가 나타났다’며 극찬했다. 그리고 그녀의 허락을 받지도 않은 채 그녀의 그림을 자신의 화랑에 전시하는 무례함을 보였다. 이에 조지아 오키프는 그의 무례함에 항의하기 위해 서부에서 뉴욕으로 가 스티글리츠를 만났다.

‘성공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씌운 스티글리츠

스티글리츠는 조지아 오키프를 단번에 스타 작가로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유명한 불륜녀로 만들었다. 조지아 오키프와 스티글리츠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인이 되었고 곧이어 동거에 들어갔다. 문제는 스티글리츠가 그녀보다 20살가량의 연상이었고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손가락질했고 그녀의 커다란 꽃그림에서 관능미를 찾으려 했다.

더욱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녀의 연인 스티글리츠 또한 그녀와 그녀의 그림을 관능의 이미지로 몰아가려 했다. 그녀를 성공무대로 끌어올린 스티글리츠의 배신으로 조지아 오키프의 이미지는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여자’로 흘러갔다. 그러나 세간의 끔직한 평판에도 불구하고 그 평판 덕에 그녀의 그림은 오히려 더 잘 팔렸다.

그림으로 이겨낸 우울증

스티글리츠는 조지아 오키프를 6년간 정부로 두었다가 마침내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했지만 그로부터 3년 뒤 스티글리츠는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에 오키프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녀는 복잡한 뉴욕을 벗어나 뉴멕시코 산타페지역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일 년에 반을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이후 1946년 스티글리츠가 죽은 뒤 조지아 오키프는 뉴욕생활을 청산하고 뉴멕시코의 산타페로 완전히 이주하여 사막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았다.

오키프의 이러한 예술혼에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여자’라는 오명도 점차 사라져갔다. 100세의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하늘로 떠난 조지아 오키프.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장례식도 추모식도 없이 뉴멕시코에 흙이 되어 뿌려졌다. 현재는 그녀가 세상에 남긴 2천여 점의 작품과 산타페에 생긴 그녀를 기념하는 미술관을 통해 그녀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평범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말하고 싶다고 모두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 조지아 오키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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