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 붕괴한 ‘페레스트로이카’...고르바초프의 굳은 신념 여전 [지식용어]
구 소련 붕괴한 ‘페레스트로이카’...고르바초프의 굳은 신념 여전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19.11.1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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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지민] 구 소련을 붕괴한 미하일 고르바초프(88). 특히 그는 1980년대 스탈린의 통치개념을 뒤엎고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담긴 ‘페리스트로이카’를 실현해 소련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여전히 소련의 몰락으로 이어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굳은 신념을 이어가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perestroika)란, 1985년 4월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실시한 사회주의 개혁정책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재건', '재편', ‘개혁’, ‘개방’을 뜻하는 러시아어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당시 소련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분야에서의 스탈린주의의 병폐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시작했다. 참고로 스탈린주의는 1920년대부터 30년간 소련공산당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을 지도해 온 ‘스탈린’의 통치 방식을 말한다. 스탈린주의의 문제점은 모든 정치적 반대가 불가능했고, 개인의 창의성이 소멸되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강도 높은 통제, 광범위한 관료조직의 출현, 소비재 공업과 농업의 낙후 등을 야기했기에 고르바초프는 이를 탈피하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9일 타스 통신에 따르면 고르바초프는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독일 슈피겔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전과 같이 살 수는 없었다"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요 부분은 보편적 가치와 핵 군축, 선택의 자유 등을 포함하는 정치적 신사고였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국가지도부는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페레스트로이카의 종말과 소련 붕괴에 대한 책임은 1991년 8월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 뒤 소련 대통령의 지위 약화를 이용한 자들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당시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한 고르바초프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해 서방에서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실현한 그를 비난하고 위협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 옛 소련 붕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낙인찍혀 정치적 지지나 존경을 받지 못한 것이다.

특히 1991년 8월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던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반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파들에 연금당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비록 이때 보수파의 쿠데타는 며칠 가지 못해 막을 내렸지만 고르바초프와 소련 지도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 보수파 쿠데타 이후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의 활동을 정지시키고 보수적 내각을 물갈이하는 동시에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하는 개혁 조치들을 취했으나, 이미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이처럼 많은 반발과 위협이 가해졌지만, 고르바초프의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다. 1980년대에 개혁의 길로 들어섰으며 실수와 착오도 있었다” “우리가 민주주의로의 여정에서 얼마나 전진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전제주의 체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노장이 된 그는 여전히 이렇게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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