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스타일로 패션계를 사로잡은 ‘크리스찬 디올’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독창적인 스타일로 패션계를 사로잡은 ‘크리스찬 디올’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지민
  • 승인 2019.11.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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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김아련/디자인 최지민]

▶ 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
▶ 출생-사망 / 1905년 1월 21일 ~ 1957년 10월 24일
▶ 국적 / 프랑스
▶ 활동분야 /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패션 스타일로 프랑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권위 있는 디자이너로 남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림을 배운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디올은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취미로 정원을 가꾸었고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디올은 어머니의 섬세함 취향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디올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외교관이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건축과 예술에 더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는 1928년 자크 봉장과 함께 1928년 파리에 소규모 아트 갤러리를 오픈했다.

디올은 자신의 갤러리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며 예술가들과 친분을 이어갔다. 그러나 1931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공황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갤러리도 문을 닫아야 했다. 이때 디올은 장 오젠느에게 패션 드로잉을 배우고 막스 케나에게 채색법을 배워 그림을 그렸고 한 장당 10센트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부티크를 오픈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크리스찬 디올

당시 크리스찬 디올이 그린 그림들의 일부는 프랑스 유명 일간지인 르 피가로에 실려 주목받았다. 또 그는 모자를 만들어 오트쿠튀르 하우스에 팔기도 했다. 디자인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디올은 1938년에 베르 피게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경력을 쌓은 뒤 1946년 프랑스에서 가장 큰 직물 회사 부사크의 사장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찬 디올은 부사크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다. 1946년 12월, 드디어 그는 파리 몽테뉴 거리 30번지에 ‘크리스찬 디올 부티크’를 오픈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첫 오트 쿠튀르 패션쇼를 열어 여성들을 위한 화려한 패션을 선보였는데, 이런 디올의 컬렉션은 파리의 새로운 스타일로 인식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사업을 확장시켜 고객들을 끌어 모은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디올은 패션뿐만 아니라 우아한 드레스에 어울리는 향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는 1947년에 ‘퍼퓸 크리스찬 디올’을 설립했고 향수 ‘미스 디올(Miss Dior)을 선보였다. 패션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향은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그는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는데 1949년 뉴욕에 기성복 매장을 오픈했다.

미국에 오픈한 매장은 선풍적인 매출을 올렸고 크리스찬 디올의 기성복 라인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심플하고 실용성이 중요시되었던 미국 시장에서 디올의 고급 맞춤복 위주의 기성복은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크리스찬 디올은 안정적인 재정을 마련했고 시즌마다 다양한 스타일의 컬렉션으로 고객들을 끌어 모았다.

전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크리스찬 디올

프랑스 몽테뉴 거리에서 크리스찬 디올은 매년 1월과 7월에 자신의 부티크에서 오트 쿠튀르 패션쇼를 열었다. 디올은 시즌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고 300여명의 관객들이 패션쇼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디올의 패션쇼는 인기가 매우 높아 당시 프랑스 고위 인사들의 부인들도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전 세계로 지점을 확장한 크리스찬 디올은 1950년에 170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다양한 스타일로 여성들을 사로잡은 크리스찬 디올은 1953년 루즈 디올을 발표해 화장품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그러다 1956년 프랑스 산업에 공로를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권위 있는 디자이너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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