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 제임스 쿡 (James Cook)
▶ 출생-사망 / 1728. 10. 27. ~ 1779. 02. 14.
▶ 국적 / 영국
▶ 활동 분야 / 탐험가, 항해사, 지도 제작

대항해 시대를 연 주인공 중 한명인 제임스 쿡. 영국 해협과 북아메리카 식민지 등지에서 지도 측량을 하면서 지도 제작법을 배운 것이 그로 하여금 과학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어린 시절과 군 생활
쿡은 영국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747년 18살이 되던 해 석탄 운반선의 수습공으로 들어가 영국 해안을 오가며 항해술을 익힌 후 보다 넓은 바다를 동경해 1755년 영국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군 생활을 말단에서 시작했지만 빠르게 항해장으로 승진했으며 1757년에는 국왕이 승선하는 함선을 조종하는 시험에 입대한 지 불과 2년 만에 합격했다.

그는 군에 있으면서 1759년 퀘벡 포위전에 참가했다. 이때 지리 조사 및 해도 작성의 재능을 발휘했으며 세인트 로렌스 강 하구의 측량과 해도 작성을 맡아 울프 장군의 기습 상륙 작전의 성공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해안 대규모의 지도 제작
쿡은 뉴펀들랜드의 복잡한 해안선 지도를 작성하는 등 1760년대에는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1763년과 1764년에 북서부에, 1765년 및 1766년에는 브린 반도와 레이 케이프 사이의 남해안을, 1767년에는 서해안을 측량했다. 쿡의 5년에 걸친 조사로 뉴펀들랜드 해안 대규모의 정확한 지도가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쿡의 첫 번째 항해
그는 국가로부터 금성을 관측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인데버(Endeavour)호의 선장이 되어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향한다. 이때 그는 괴혈병을 막기 위해 절인 양배추와 과일을 가져갔고 이걸 먹지 않는 선원은 채찍질하는 형벌을 만들어 엄하게 다스리기도 했다. 1769년 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돌았고 그 후 타히티 섬에 도착해 관측소를 설치한다.

또 남극을 발견하거나 남극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곧장 뉴질랜드로 향해 뉴질랜드가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남극 대륙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입증한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해안에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즉 대보초를 발견하고 1771년 영국으로 돌아온다.

쿡의 두 번째 항해
첫 번째 항해 귀환 후 해군 대위에서 해군 중령으로 승진했다. 1772∼1775년의 쿡은 남극 대륙을 확인한 후 북서 항로를 개척하라는 임무를 받고 탐험을 계속했지만 원주민들에 의해 부하를 잃고 부득이하게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때 괴혈병 예방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립 학회로부터 표창을 받는다. 바다로 떠나는 욕구를 견디지 못했던 쿡은 다시 세 번째 항해를 떠난다.

쿡의 세 번째 항해와 최후
쿡에게 주어진 세 번째 항해의 목적은 북서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1778년 1월, 쿡 일행은 북쪽으로 항해를 시작해 유명한 크리스마스 섬은 물론 유럽인 최초로 샌드위치 제도(지금의 하와이)를 발견했다. 쿡의 선단은 하와이를 출발해 다시 북상하여 북서항로를 발견하려 했지만 태풍 때문에 하와이로 기수를 돌렸고 이것이 쿡의 마지막이 됐다. 하와이에 상륙한 후 하와이인들이 물건을 훔쳐 간 것을 돌려받기 위해 당시 하와이의 족장을 인질로 잡으려 했다가 실패하고 이때 쿡도 원주민들에게 살해되고 만다.

불굴의 용기와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당대의 유능한 항해가로 평가받는 ‘제임스 쿡’. 비록 하층민 출신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항해에 과학적인 바탕을 세우며 괴혈병을 사라지게 만든 제임스 쿡의 업적은 지금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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