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기원전 221년 진은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고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켰다. 진 시황제는 전국을 36개의 군으로 나누고 관리를 파견하는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고 반량전이라는 화폐와 도량형, 문자(전서체), 수레바퀴의 폭 등을 통일하여 하나의 국가로서 기틀을 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분서갱유(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함)를 실시하였고 흉노족을 축출하였으며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진은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했지만 가혹한 통치와 대규모 토목 공사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로 인해 진승, 오광의 난 등의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나 겨우 15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기원전 202년, 유방은 장안을 도읍으로 하여 한을 건국하였다. 한은 군현제와 봉건제의 절충 제도인 군국제를 실시하였는데 군현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했다.

또한 동중서의 건의를 수용하여 유교를 관학화 하였고 오경박사(《시(詩)》·《서(書)》·《주역(周易)》·《예기(禮記)》·《춘추(春秋)》의 오경(經)마다 박사관(博士官)을 두어 제자를 양성시켜서 유학의 보급 발달을 도모하는 제도)를 설치하였고 태학을 설립하여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또한 흉노 토벌을 위해 장건을 대월지에 파견하여 남월과 고조선을 하였고 이런 잦은 대외 원정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악화되자 소금과 철의 전매제(국가 독점)와 균수법(국가가 지방의 산물을 조세로 징수하여 다른 지방에 운송·판매함으로써 국가의 재정 수입 증대와 물가 안정을 도모), 평준법(물가 안정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오수전(화폐)을 주조하였다.

그러나 외척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을 건국하였다. 신은 토지를 국유화 하고 노비 매매를 금지하는 등 개혁을 실시하였지만 호족들의 반발로 멸망하고 만다. 이에 광무제가 호족의 지원으로 뤄양에 도읍을 세우고 후한을 일으켜 세워 전한의 정치 제도를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환관과 외척, 관료 사이의 대립 등으로 중앙의 통치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황건적의 난을 비롯한 농민들의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나 한은 220년에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 통일이 되지 않았던 중국은 위, 촉, 오의 삼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