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해 일한 인류의 교육자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타인을 위해 일한 인류의 교육자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이연선 pro
  • 승인 2019.08.17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연선]

▶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Johann Heinrich Pestalozzi)
▶ 출생-사망 / 1746. 01. 12. ~ 1827. 02. 17.
▶ 국적 / 스위스
▶ 활동분야 / 교육학

일평생을 교육실천가로 살면서 자신이 구상한 교육원리를 실제 교육에 적용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그는 헤르바르트, 프뢰벨과 더불어 20세기 신교육의 기초를 연 사람이면서도, 나머지 두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 따뜻한 가정환경에서 지낸 어린 시절
페스탈로치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아버지 요한 바프티스트와 어머니 수잔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 주었고 페스탈로치가 9세가 되던 해에 병으로 별세하고 만다. 홀로 남은 페스탈로치의 어머니는 자식을 돌보면서도 고아원에 틈틈이 음식과 옷을 보내는 등 페스탈로치는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실천하는 따뜻한 가정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 아이들 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
페스탈로치는 취리히 대학교로 진학 후 학교에 다니는 동안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했으며 모임에서 같이 활동하던 ‘안나’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인도주의적이고 종교적으로 청소년을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에 노이호프에 농민 학교를 설립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교육에 온 힘을 쏟는다.

아이들과 낮에는 농사를 짓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공동야학을 열었으나 극심한 재정난으로 실패로 끝나버렸다. 이 실패로 페스탈로치는 무일푼이 되었고, 이때 아내 안나도 병으로 별세하고 만다. 페스탈로치는 이 무렵부터 사색과 저술 활동에 몰두하였다.

- 저서를 남기며 그의 이론 제시
페스탈로치는 별세할 때까지 교육실천가로 활동하며 <은자의 황혼>,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등의 저서를 남겼고 가정의 안정은 인간 행복의 기초라는 그의 기본이론의 윤곽을 제시했다.그리고 그는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며, 고유의 세계가 있는 인격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으로 보아서 어린이들의 개성을 무시하던 당시 사람들의 교육관을 개혁하는 생각이었다.

- 독자적인 교육 방법 시도
1798년에는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는데 그 여파가 스위스에도 밀려왔다.이에 페스탈로치는 슈탄스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전쟁고아들을 돌보기도 한다. 그가 모든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깊은 사랑으로 대하자, 아이들은 그를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를 따랐다. 이후 페스탈로치는 교육에도 힘을 써 부르크도르프, 이베르돈에 학교를 세워 시청각 교육이라는 독자적인 교육 방법을 시도했으며 또한 글이나 말로만 떠들지 않고 구체적으로 사랑의 교육을 실천하기도 했다.

- 페스탈로치의 방법론
그의 이론은 널리 인정받았으며 대부분의 교육원리는 현대 초등교육에 흡수되었다. 페스탈로치의 교육 신조는 수업은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예술 행위와 실제적인 정서적 반응의 경험 등을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또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아동의 발달단계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암송학습보다는 집단학습을 강조했고 그림 그리기, 글쓰기, 노래하기, 모형 만들기, 현장학습 등 참여 활동에 초점을 두었다.

가난한 사람을 구하며 교육하는 일에 힘쓴 ‘페스탈로치’. 그는 모든 일을 남을 위해서만 베풀었을 뿐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 사랑을 몸소 실천한 페스탈로치는 영원한 우리들의 교육자이자 선생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