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디자인 이연선]

▶ 앙리 뒤낭 (Jean Henri Dunant)
▶ 출생-사망 / 1828년 5월 8일 – 1910년 10월 30일
▶ 국적 / 스위스
▶ 활동분야 / 사회 활동가, 사업가, 작가
▶ 수상 / 노벨 평화상(1901년)

국제적십자운동을 창시한 스위스의 인도주의자.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며 그의 생일인 5월 8일은 적십자의 날로 지정되어 매년 기념하고 있다.  

- 부모의 영향을 받은 앙리, YMCA 창설에 참가하다
앙리 뒤낭의 아버지는 제네바 시의회에서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어머니는 개신교 신자였다. 앙리의 부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들로 아버지는 제네바의 고아 수용소 자혜국장을 역임할 뿐 아니라 소년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어머니 역시 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에 힘썼다. 앙리는 이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기부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이 높았으며 또한 그런 사람들을 구호하는 데 힘썼다. 1852년 10월 20일 제네바 YMCA를 설립한 뒤낭은 세계 YMCA 연맹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약 2천 3백만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YMCA연맹은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

- 제분회사 설립과 예상하지 못한 장벽
1853년 앙리 뒤낭은 제네바에서 다니던 회사의 인사발령으로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로 파견을 가게된다. 그는 사업과 선교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지에서 제분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대량의 밀을 생산하기 위한 토지 이용권을 식민지행정당국이 허가하지 않으면서 사업 진행에 차질이생기게 된다. 그래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만나 자신의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담판을 짓기로 결심하게 된다.

- 사업가에서 사회활동가로 삶이 바뀌다
나폴레옹 3세를 만나기 위해 북 이탈리아로 향한 뒤낭은 솔페리노에서 참혹한 전투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사업을 뒤로 한 채 마을 부녀자들의 도움으로 긴급구호대를 조직하여 부상병들을 돌보게 된다.

- 적십자를 창립하다
앙리 뒤낭은 솔페리노 전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솔페리노의 회상>을 집필하여 자비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전시에 부상자 구호를 위한 구호 단체를 만들고, 부상병과 구호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 조약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뒤낭의 두 가지 제안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제네바협약으로 결실을 맺게된다. 

-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다
적십자활동을 통해 전 재산을 모두 써버리고 국제적십자 조직 내분으로 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난 앙리. 그는 1867년 고향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집필활동을 하게 된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간의 보불전쟁이 벌어지자 앙리는 프랑스 국방위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구호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01년 박애정신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제 1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앙리 뒤낭은 말년을 최소한의 연금에 의지하며 가난한 신세로 살았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에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했으며, "모든 사람은 서로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앙리 뒤낭. 그가 창설한 적십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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