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주 왕실과 제후 사이의 혈연적 유대관계가 약화됨에 따라 기원전 8세기경 견융이 주를 침입하였다. 이에 주는 수도 호경을 빼앗기고 낙읍으로 천도하였다. 이때부터 진이 통일하기 전까지를 동주시대라 하는데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뉜다.

춘추시대는 춘추 5패가 존왕양이(‘왕실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를 명분으로 하여 세력 다툼을 전개하였다. 말은 왕실을 받드는 것이지만 서로를 왕권을 위협하는 반역자라며 명분을 만든 것 뿐 모두의 속내는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전국시대는 전국 7웅이 약소국들을 힘으로 병합하면서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였다.

춘추전국시대는 봉건제가 붕괴되고 군현제가 등장하였다. 또한 철제 농기구와 소를 이용한 농사법인 우경이 보급되어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였고 토지의 사유화가 진전되었다.

또한 교통이 중심지에 대도시가 형성되어 도전과 포전 등 화폐가 유통되었다.

이 시기에는 소농민 가족들이 사회의 기초단위였으며 사농공상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철제 무기가 보급되면서 귀족 중심의 전차전에서 보병과 기병 중심의 대규모 전쟁으로 전환되어 백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고 인구수가 국력의 기준이 되었다.

또한 제후들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다 보니 인재가 필요하게 되었고 국가 차원에서 이런 인재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사상가와 학파가 등장하였는데 유가, 도가, 법가, 묵가, 기타인 제자백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공자를 위시로 하는 유가는 인과 예를 중심으로 한 도덕 정치를 주장해 맹자와 순자가 계승하였다. 유가는 가족 윤리 확립을 통하여 사회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였다. 유가는 중국 사상의 주류를 형성하였고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노자와 장자를 대표로 하는 도가는 무위자연을 주장하여 중국인의 자연관과 회화, 시 등의 예술과 종교 등에 영향을 끼쳤고 상앙, 이사, 한비자 등을 중심으로 하는 법가는 군주의 권위를 존중하고 엄격한 법치 시행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묵가, 명가, 병가, 종횡가, 음양가 등 다양한 사상들은 중국의 학문과 사사으이 기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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