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이연선]

▶ 안토니오 메우치(Antonio Meucci)
▶ 출생-사망 / 1808. 04. 13. ~ 1889. 10. 18.
▶ 국적 / 미국(토스카나 대공국 출신)
▶ 활동분야 / 발명

인류 최고의 발명을 했지만 오랜 기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발명가

- 여러곳을 떠돌다
안토니오 메우치는 이탈리아 피렌체(당시 토스카나 대공국)에서 태어나 피렌체 미술원과 세관의 직원, 페르고라 극장의 무대 기사 등 다양한 직업에서 종사하였다. 그리고 무대 기사를 하는 도중 미래의 아내인 에스테르 모치를 만나게 되었다.

1831년 정치적 신념으로 쿠바로 이주했다가 1850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뉴욕에서 수지 양초 공장을 세웠다.

- 아내의 치료를 위해 전화기를 발명하다
그러는 도중 아내인 에스테르 모치가 중한 병에 걸리게 된다. 이에 메우치는 전기로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가 우연히 입에서 나온 소리가 선을 타고 귀로 흘러 들어가는 전화기의 기본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메우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최초의 자석식 전화기를 발명했다.

-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임시특허를 얻다
안토니오 메우치는 발명가로서 굉장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화학적, 기계적인 방법을 이용한 장치들을 다수 발명했지만 불행히도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양초 회사는 도산하여 자금난에 시달렸고 그가 발명한 발명에 대한 영구적인 특허권을 얻는 금액을 지불할 수 가 없었다. 메우치는 어쩔 수 없이 전화기에 대해 매년 10달러를 지불하여 임시특허를 얻고 이를 갱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873년까지 이 특허를 갱신했다.

메우치는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Western Union Telegraph Company)와 의논을 하였는데 그 동안 설계도와 전화기 모델을 분실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도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그레이엄 벨이1976년 메우치가 발명한 것과 비슷한 전화기로 특허를 취득했다.

- 벨에게 전화기 최초 발명가의 타이틀을 빼앗기다
이를 뒤늦게 안 메우치는 즉시 제소했지만 그는 이미 파산한 상태였으며 재정 상태는 음식조차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대기업인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재판에서 안토니오 메우치는 기계식 전화만을 발명했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전기식 전화를 개발하여 전기식 특허를 얻었다고 하는 판사의 판단으로 1887년에 메우치는 모든 전화 특허권을 벨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로 인해 안토니오 메우치의 출신 국가인 이탈리아 왕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로 알려지게 된다.

- 뒤늦게 인정을 받지만...
하지만 사후 113년이 흐른 후인 2002년 6월 11일 미국 의회의 결의안에 따라 안토니오 메우치가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로서 공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별명을 했지만 특허 분쟁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안토니오 메우치. 지금도 여전히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는 벨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 그를 슬프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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