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인류는 자연환경에 의존하고 때로는 도전하면서 삶의 터전을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지역 중심 문화가 형성되었고 지역 세계나 문명 간의 갈등과 충돌을 겪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세계사를 학습함으로써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적 갈등을 극복하며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목적을 둔다.

약 4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연하였다. 이들은 두 발로 서서 걷고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약 180만 년 전에는 베이징인, 자와인 등으로 알려져 있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은 현재의 인류와 흡사하게 불과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약 40만 년 전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살았는데 이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이 생겨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을 가졌고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서는 약 20만 년 전에 등장해 동굴 벽화 등 수준 높은 예술품을 남겼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자연에서 그냥 구할 수 있거나 부숴서 만든 뗀석기를 사용했다. 이들은 불과 언어를 사용하며 사냥과 어로, 채집 생활을 했으며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했다.

이들은 주로 동굴이나 숲속, 바위 그늘 등 천연적으로 생성된 장소 중 거주하기 편한 곳에서 살았으며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동굴 벽화인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 벽화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등의 조각품을 남겨 예술 활동을 활발히 했음을 보여주었다.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는 도구로 사용한 돌을 가는 등의 가공을 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토기를 제작하여 사용했으며 이동 생활을 마치고 촌락을 형성하여 정착생활을 하였다. 의복을 제작하였고 애니미즘이나 거석 숭배, 토테미즘 등 주술적 신앙을 갖게 되었다.

특히 농경과 목축은 신석기 사람들의 정착이 가능하게 되었고 생산력이 증대하여 인구 역시 크게 늘어날 수 있던 조건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신석기 혁명’이라 불렸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혈연적 씨족 사회로 발전했고 재산의 공동 수유, 공동 분배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하지만 신석기 후기부터는 일부 지역에서 부족이 형성되고 사유 재산이 형성됐으며 이로 인해 계급 분화 및 지배층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구석기와 신석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농경과 목축이다. 신석기에는 한 자리에서 대량 생산 활동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잉여 자원이 남는다는 것은 그 자원을 독차지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로 인해 시키는 지배층과 따르는 피지배층이 생겼고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만년이 넘게 지났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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