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기자/디자인 이연선]

▶ 본명 / 리수멍(李淑蒙)
▶ 개명 / 장칭(江靑)
▶ 출생-사망 / 1914.3.19 ~ 1991.5.14
▶ 국적 / 중국
▶ 활동분야 / 예술가, 정치가

연극과 정치 활동을 활발히 이어간 중국의 신여성. 불우한 환경을 이기고 당대 최고 권력이던 마오쩌둥과 결혼에 성공하며 최고의 권력을 지니지만, 결국 어둠 속에서 스스로 숨을 거두고 만다.

- 불우한 환경 속 한줄기 빛으로 삼은 ‘연극’
장칭의 본래 이름은 ‘리수멍’이다. 목수인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 태어난 리수멍은 매우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심지어 리수멍의 아버지는 모녀에게 매일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어둡고 긴 터널과도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리수멍은 하루 빨리 이 지옥 같은 터널을 벗어나고 싶었고, 그 방법으로 ‘배우’가 되리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이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와 따로 나와 살 수 밖에 없었던 리수멍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15세 때 산동성 연극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 꿈과 이상을 좇으며 신여성으로 성장
그러던 중 리수멍이 다니던 연극학교가 모종의 이유로 폐교되고 말았고, 그녀는 꿈을 접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연극은 리수멍에게 직업을 넘어 자신의 암울한 인생을 반전시킬 유일한 희망과도 같았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연극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방법을 강구했다. 그렇게 결국 한 실험극원에 들어가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하늘도 리수멍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일까. 그녀가 연극에 작은 역할로 설 수 있게 되었고 이내 차츰차츰 연극 무대에서 리수멍에게 응원을 보내는 관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환경이 나아지던 리수멍은 꿈에 그리던 대학에도 들어가 청도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당당한 현대 여성으로 성장해 나갔다.

- 배우는 물론 정치적 활동도 활발
사회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리수멍. 점차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중국 공산당 활동을 활발히 하던 연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에게 영향을 받아 리수멍 역시 공산당원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그녀는 잦은 침략을 이어 온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항일운동을 펼쳤고, 아울러 중국의 구시대적인 봉건사회를 비판하는 활동에 열을 올렸다. 그런 와중에서 연기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리수멍은 중국 각지에서 다양한 예명으로 왕성한 연극 영화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남성들과 연을 맺으며 사회적 영향력도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 운명 같은 마오쩌둥과의 만남, 그리고 결혼
그러던 중 리수멍의 인생이 반전을 맞이한다. 루신예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때,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마오쩌둥(모택동)이 그곳을 방문했고 열정적인 리수멍에게 반한 것. 그렇게 당대 최고의 권력가 마오쩌둥과 친분이 쌓이게 된 24살 꽃 다운 리수멍은 당시 45살 마오쩌둥의 마음을 결국 사로잡았다. 그렇게 마오쩌둥의 본처를 내몰고 1939년 마오쩌둥과 결혼에 성공한 리수멍은 중국 신여성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양한 예명을 정리하고 ‘장칭’이라는 이름을 본격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 후 인생 반전을 맞이한 리수멍, 아니 ‘장칭’. 하지만 장칭의 과거 문란했던 남성 이력에 대한 소문이 공산당 내에 돌기 시작했고, 당시 마오쩌둥 주변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장칭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허락했다. 그 약속에 따라 장칭은 연기 학원의 교수직 이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으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마오쩌둥 문화대혁명과 함께 최고의 자리에...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마오쩌둥이 본격적으로 중국 대혁명을 준비하면서 장칭 역시 뜻이 같았기에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특히 마오쩌둥은 장칭을 내세워 문화대혁명을 추진했고, 그녀는 문화혁명의 지도자가 되어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후 승승장구하며 권력을 키우던 장칭은 수많은 고위직을 거치며 어릴 적 가난하고 폭력이 난무했던 불우한 기억을 지워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장칭, 아니 ‘리수멍’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을까. 노년을 맞은 리수멍에게 다시 긴 어둠에 터널이 깔리기 시작했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후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던 과격주의자로 분류되어 그녀는 체포되었고, 특히 주범으로 분류되어 1981년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무기형으로 가택에 연금된 리수멍은 1991년 어느 날, 어두 방에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불우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연극 무대에 올랐던 ‘리수멍’. 오직 희망을 바라보고 열심히 삶에 집중했던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지만 결국 인생의 황혼은 어둠 속에서 지고 말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혁명과 함께 빛을 발하고, 이내 촛불처럼 꺼진 그녀의 삶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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