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최초의 흑인 장애인 잠수부 ‘칼 브레이셔’
[카드뉴스] 최초의 흑인 장애인 잠수부 ‘칼 브레이셔’
  • 보도본부 | 박진아 기자
  • 승인 2019.07.1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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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김미양]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긴 합니다. 하물며 과거라면 지금보다 그 차별이 훨씬 더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죠.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잠수부가 있는데요. '최초의 흑인 장애인 잠수부' 칼 브레이셔입니다.

1943년 켄터키주의 가난한 소작농 아들로 태어난 칼 브레이셔. 그는 가난을 피해 해군에 입대합니다. 그렇게 입대한 해군에서 칼이 맡은 보직은 취사병이었습니다.

취사병으로서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칼은 헬리콥터 사고로 바다에 빠진 동료를 상사 ‘선데이’가 잠수복을 입고 구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때부터 그는 잠수부를 꿈꾸게 되죠. 하지만 해군 잠수부가 되고자 마음먹은 뒤부터의 일은 순탄치 않습니다. 바로 흑인에 대한 편견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칼 브레이셔.

해군 잠수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학교에 보냈고, 그런 노력 끝에 잠수 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어느 누구도 흑인인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료 훈련병은 물론 훈련 장교들까지도 칼에게 빈정거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해군 잠수부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던 칼은 이에 동요되지 않고 묵묵히 훈련을 해나갑니다.

마침내 칼은 잠수 학교의 졸업 마지막 시험인 수중에서 배관을 조립하는 시험을 치릅니다. 하지만 흑인이 잠수 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일까요. 시기를 했던 사람들은 칼에게 필요한 공구들을 바다 속에 뿌려버리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칼은... 추위와 싸우며 물 속 공구를 찾아내 결국 9시간 여 만에 조립을 완수해 냈고 졸업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잠수부로 활동하던 중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핵폭탄 1발이 바다로 떨어지게 됩니다. 칼을 포함한 해군 잠수부들은 핵폭탄 수색을 맡게 됐고 두 달 반의 수색 끝에 핵폭탄을 수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를 인양하는 과정에서 칼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이 사고로 그가 다리 한쪽을 잃게 된 겁니다. 그렇게 그의 꿈이자 희망이었던 잠수부의 일을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겁니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상황.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이라면 잠수부의 삶은 당연히 포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재활운동 끝에 해군 인사 청문회에 나서고, 이 자리에서 칼은 150kg의 잠수복을 입고 혼자 12걸음을 걸어내며 잠수부로서의 체력을 검증받습니다.

그렇게 2년 뒤 그는 최초의 흑인 다이빙 교관이 됐으며, 그 후 9년 동안 해군에 몸을 담으며 수석 다이버의 명예를 얻고 은퇴합니다.

인종 차별과 신체적 장애를 이겨내고 미군 역사상 최초의 장애인 잠수사가 된 칼 브레이셔. 주변의 편견들을 이겨내고 전문 잠수부로 인정받기까지의 그의 인생은 바로 끝없는 도전과 끈기,인내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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