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지루함보다는 열정을, 기쁨보다는 슬픔을 즐긴 ‘반 고흐’
[카드뉴스] 지루함보다는 열정을, 기쁨보다는 슬픔을 즐긴 ‘반 고흐’
  • 보도본부 | 박진아 기자
  • 승인 2019.07.0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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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김미양] 살아생전 자신의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던 화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 했지만 평생 고독과 쓸쓸함 속에서 삶을 살아야 했던 화가.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죽음까지도 스스로 택한 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20대 초반 이런 내용을 다음 편지를 씁니다. "슬픔은 기쁨보다 더 낫습니다.커다란 기쁨 속에서조차 마음은 슬프지만 잔칫집보다는 장례식에 가는 편이 더 낫습니다. 겉모습은 슬퍼 보일지라도 마음은 오히려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슬픔을 즐겼던 이유는 성장환경의 영향이 컸습니다.

고흐는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직자의 길을 열망합니다. 그리고 매일 성경을 탐독하기에 이르죠.

또 최하층민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직접 오두막에 지내며 전도활동에도 전념합니다. 그렇게 고흐는 복음 전도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의 광신도적 기질과 격정적인 성격은 결국 교회로부터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흐는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내 고흐는 화랑에서 일했던 경험과 습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라 믿게 됩니다. 그리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술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납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쯤의 대표작인데요.

그는 언제나 노동자, 농민 등의 하층민 생활과 풍경을 그렸습니다. 네덜란드 시절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어둡고 비참한 주제가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다 파리에서 고흐는,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를 접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며 정열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특히 프랑스 아를르로 이주하고 난 뒤 부터는 고흐 특유의 화풍을 전개시키는데, 꼼꼼한 필촉과 타는 듯 한 색채가 그것이고, 이 때의 주 작품으로는 《해바라기》, 《아를르의 침실》 등이 있습니다.

한편 고흐는 평소 존경하던 장폴 고갱과 함께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고흐와 고갱은 성격차이로 늘 문제를 일으켰고 이맘때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에 고갱과 다툰 후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에 이르고 바로 이 시기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 《귀가 잘린 자화상》이 탄생합니다.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는 입·퇴원을 반복합니다. 발작이 없을 때에는 미친 듯이 그림을 렸고, 이 시기 탄생한 작품이 《별이 빛나는 밤》, 《의사 가셰의 초상》입니다. 하지만 발작과 그림에 지친 그는 1890년 봄, 파리 근교로 떠나고 이 곳에서 37살의 나이에 권총으로 자살을 택합니다. 

‘지루함에 사느니 차라리 열정 속에서 죽겠다’.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존경하던 고갱이 그의 곁을 떠난 슬프고도 쓸쓸한 상황에도 고흐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고흐는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았고, 자신을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함 속에 살다 갔습니다. 하지만 고흐의 그 열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에 뒤늦게라도 그의 작품들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일 겁니다.

“I dream my painting and I paint my dream.” ― Vincent van Gogh
"나는 나의 그림을 꿈꾸고 내 꿈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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