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0 힘없이 무너져가는 80년대 북한의 경제
EP.240 힘없이 무너져가는 80년대 북한의 경제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9.06.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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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의 경제는 8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70년대부터 진행되었던 당과 군 경제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 되어 북한의 대부분의 자원들이 당과 군 경제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로 민간 경제의 비율이 축소되며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1인 독재 체재의 강화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 역시 크게 경직되어갔다.

게다가 북한에 사상적,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주던 소련 역시 계획경제의 한계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불황을 맞이하였다.

석유파동과 더불어 외채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대외 교역이 크게 둔화되었다. 그리고 1968년 1월23일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더욱 무언가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은 미합중국 해군의 정보수집함(AGER-2) USS 푸에블로 함이 1968년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의 공격을 받고 강제로 나포당한 사건이다. 승조원 83명 중에서 나포 도중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였고 나머지 82명은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훗날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 송환이 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정치적인 문제로 무조건 승조원들을 구출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원하는 대로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였고 해적 행위를 하였다고 자백을 하였고 미국 정부도 사과를 하게 되어 북한이 미국에게 승리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 결과게 고취된 김일성은 '경제국방병진노선'을 천명하면서 국가전체예산의 50%를 군수산업으로 전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편 기본 전제로는 소련의 원조가 있었는데 마침 소련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치르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는 등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급급했다. 때문에 소련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이것에만 기대고 있던 북한의 경제는 그래도 추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해갑문 건설, 세계청년학생축전 유치, 비날론 공장 증설이라는 3대 실정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서해갑문 건설에 약 70억 달러, 세계청년학생축전 유치로 약 60억 달러, 그리고 비날론 공장 증설로 약 100억 달러, 총합 23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날려버려 북한 경제의 기반이 매우 위태로워졌다.

사회주의 경제의 한계와 3대 실정,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인 군비의 과도한 확장 등이 겹쳐져 북한은 70년대까지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황금기를 끝내야만 했다. 그리고 북한을 기다리는 것은 끝나지 않는 고난이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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