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당 현종을 사로잡은 양귀비, 그녀의 매력은?
[카드뉴스] 당 현종을 사로잡은 양귀비, 그녀의 매력은?
  • 보도본부 | 김아련 기자
  • 승인 2019.06.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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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김아련 / 디자인 이연선] 양귀비는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중국황제의 귀비로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힌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 속의 전설로 전해질 정도인데, 그녀는 과연 어떤 매력을 갖고 있었을까?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으로 중국 쓰촨성에서 태어났지만 고아로 자라 양씨 가문의 양녀가 되었다.현종이 양귀비를 자신의 귀비로 삼은 일화는 다소 놀랍다. 양귀비는 본래 현종의 열여덟째 아들 이모의 비로 며느리였다. 당시 현종의 나이는 60세였고 양귀비의 나이는 25세였다고 한다.

나이가 현종의 손녀정도 밖에 되지 않는 양귀비를 맞이한 현종은 늦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에 깊이 빠져든다. 황궁에는 후궁이 3천 명에 달했지만 현종은 오직 양귀비에게만 애정을 쏟았다.

현종은 정치를 점차 등한시하기 시작했고 양귀비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양씨 집안에 벼슬이 내려지고 그 일가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다. 결국 황제의 인사권도 양귀비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그런데 그녀의 친척 오빠였던 양국충이 양귀비와 몰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던 안녹산에 불안함을 느껴 황제에게 험담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안녹산이 위험을 느끼고 한발 앞서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와 귀비는 쓰촨으로 도주하게 된다. 양씨 일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들은 양국총을 죽이고 현종에게 양귀비의 목숨을 요구했다.

현종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고 결국 양귀비는 스스로 목을 메어 최후를 맞이한다.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는 죽었지만 현종은 양귀비에 대한 사랑이 깊어 양귀비의 영정을 침실에 놓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당 현종을 사로잡고 나라의 권력을 휘어잡은 양귀비는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여러 기록들을 통해 양귀비의 외모를 유추해볼 수 있는데 당나라 때 화가가 그린 ‘귀비출욕도(貴妃出浴圖)’에서 후세인들은 양귀비의 대략적인 외모를 알 수 있다.

먼저 그녀는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졌으며 작은 키에 65kg에 달하는 통통한 몸매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환비연수(環肥燕瘦)라는 고사성어의 기원을 보면 양귀비는 통통하고 조비연은 날씬하다는 의미로 양귀비와 관련된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풍비농려, 열렬방자(豊肥濃麗, 熱烈放姿)’ 라고 하여 풍만함이 미적인 기준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만의 채취로 현종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할 때마다 그녀의 목욕물이 시내로 흘러들어갔는데 장안은 그녀의 향기로 가득 찼고 장안의 남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현종은 수려한 풍경과 지하 온천수가 유명한 화청지에서 양귀비와 목욕을 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특히 양귀비는 장미목욕을 즐겨했는데 화청지 목욕탕에 일년 내내 신선한 장미 꽃잎을 한가득 담아두고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장미목욕은 피부색을 맑고 투명하게 가꾸어주고 윤기를 내주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양귀비의 장미목욕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귀비는 가무에도 뛰어났고 군주의 마음을 이끄는 총명함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이백은 그녀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는 귀비와 현종의 비극을 <장한가>에 담아 노래했다.

이렇게 양귀비는 후세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대명사이자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주인공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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