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9 북한의 다가올 고난을 만들어간 70년대
EP.239 북한의 다가올 고난을 만들어간 70년대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9.06.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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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은 1970년대 초반부터는 소련을 본받아 농업의 기계화를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에게 기술 이전을 받으려 했지만 소련은 1960년대 중반부터 기술 유출을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이에 북한은 농기계 개발을 자력으로 하게 되어 조선형 트랙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북한은 농업 생산량이 북한 내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어획량도 많아 명태를 무상으로 배급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의 풍부한 자원을 수출하여 고급스러운 외제 상품들이 반입되기도 했다.

북한은 이런 경제 발전을 기반으로 1973년까지는 남한보다 1인당 GNP가 높았다. 하지만 북한은7.4 남북 공동 성명 등 남북회담을 위해서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남한의 경제 발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남한은 경공업이 상당히 발전한 편이었고 중화학공업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던 시점이서 엄청난 발전을 하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70년대 중반부터 슬슬 쇠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주체 조선인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체사상에 근거해 식량 자급을 목표로 하는 주체농법(主體農法)을 시작하였다.

이는 기술에 근거하는 농법이 아닌 조선노동당이 시키는 대로 근성을 갖고 임하는 농법으로 예를 들면 식량이 부족하면 산림을 농지로 바꾸라 하여 산을 개간하고 다랑논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이런 농법으로 인해 산은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이 되어 민둥산이 되고 이는 곧 홍수의 원인이 되어 농사를 다 망쳐버리게 된다.

또 생산성을 높이라며 화학 비료를 대량 투여하고 논에 고밀도의 모심기를 지도하여 단기적인 생산성은 높였지만 땅이 황폐화 되어 많은 농지가 쓸 수 가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사상을 근거로 한 주체농법은 이후 90년대 고난의 행군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또 북한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세계 두 번째의 합성섬유인 비날론을 무리하게 생산하려는 시도를 했다. 북한의 이승기 박사가 발명한 비날론은 가볍고 질기고 화학약품에 강하면서 천연섬유에 가까운 장점을 갖췄지만 대규모 생산 시설이 필요하고 제조단가가 너무 비쌌으며 엄청난 폐기물이 발생했다.

또한 전력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산과 들의 나무들이 벌목되어 대홍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당과 군의 경제가 분리되는 정책도 시기에 수립되어 80년대에 가속화가 되었다. 즉 70년대는 그럭저럭 살만했지만 모두 단기적인 결과에 불과했고 이로 인한 고난은 8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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