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일제 강점기 이래 한반도 북부에는 막대한 중화학 공업 투자가 이루어졌었다. 1918년 일본제철이 겸이포 제철소를 건설하였고, 1930년대에는 일본질소비료에 의해 흥남비료공장이 세워진다. 또한, 압록강에 수풍수력발전소 등 여러 수력 발전소를 건립해서 만주국과 한반도에 전력을 공급하였다.

일제는 패망을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막대하게 투자해 놓은 공장과 생산물자들을 그대로 둔 채 한반도를 떠나야 했다. 북한은 이를 그대로 접수하여 남한보다 월등한 경제력을 갖출 수 있었고 조선 노동당은 이를 바탕으로 1946년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밀어붙일 수 가 있었다.

그리고 북한은 일본으로 귀국하려는 일본인 중 기술자들을 억류하여 1948년까지 강제로 기술을 이전받았고 일본이 만들어 놓은 군수공장에서 소총, 기관총, 박격포 등과 같은 기초 병기와 탄약들을 생산하여 남침을 준비하는 등 남한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하지만 북한의 우월했던 중공업 분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비료공장은 미군의 집중 포화로 초토화 되었고 겸이포 제철소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 아직 힘이 있었던 소련과 중국, 동독과 체코 등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북한의 많은 인재들이 소련이나 동유럽 등에 유학을 통해 선진기술을 북한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으로 소실되었던 흥남비료공장은 더 크고 신식 기술로 재건될 수 있었고 제철소, 조선소, 화학 공장 위주의 중공업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 북한이 이렇게 발전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남한은 여전히 농업국가에 머물러 있던 상태였다.

북한은 1958년 협동조합을 통해 농업의 집단화와 영세한 규모의 개인 수공업과 상공업의 국유화를 완성하는데 성공하였고 인민 노동력의 대규모 동원도 가능하게 되었다.

북한은 선진 기술과 산업을 갖춘 소련에게는 설비와 기술을 도입하였고 중국으로부터는 원자재와 식료품을 들여오는 등 양국으로부터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

또한 1960년대부터는 기초 과학 분야와 산업 기술들을 북한의 독자적인 기술로 체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보는 남한보다 거의 20년 앞선 것으로 일제가 남기고 간 중화학 공업을 바탕으로 경공업의 발전까지 스스로 꾀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중화학과 경공업 등으로 경제적인 꽃을 피웠던 이 시기를 북한은 ‘황금기’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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