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김아련/디자인 이연선]

▶ 피나 바우쉬 (Pina Bausch)
▶ 출생-사망 / 1940년 7월 27일 ~ 2009년 6월 30일
▶ 국적 / 독일
▶ 활동 분야 / 현대무용가 겸 안무가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여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현대무용가 겸 안무가

-남다른 감수성을 가졌던 ‘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는 1940년 독일 북부의 졸링겐에서 태어났다. 피나 바우쉬의 부모님은 레스토랑이 딸린 여관을 운영했는데 어릴때부터 레스토랑에서 음악을 들으며 홀로 춤을 추며 자랐다. 그러면서 그녀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도취되어 즐거움, 행복, 슬픔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레스토랑을 오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관찰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표정을 느끼며 어릴 때부터 키워온 감수성은 그녀가 커서 무용수로 활동하는 데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성장한 피나는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르트 요스(Kurt Jooss)의 제자가 되어 무용을 정식으로 배웠고 남다른 감수성으로 표현력이 뛰어났던 피나는 요스가 운영했던 폴크방 스쿨(Folkwang School)의 수석 무용수로 졸업했다.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데뷔한 ‘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는 폴크방 스쿨을 졸업 한 후 미국 줄리어드 스쿨에서 유학을 마치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폴크방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다. 이후 1968년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의 곡을 바탕으로 첫 안무가로 데뷔하였고 이듬해 <시간의 바람 속으로 (Im Wind der Zeit)>란 작품으로 쾰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안무가로서 소질을 발휘했다.

이후 1973년 피나는 부퍼탈 시립 공연장 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취임했다. 그녀가 만든 안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형식이었다. 그녀의 스승인 쿠르트 요스 가르침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형식적인 틀에 맞춰진 기존의 고전발레와는 다르게 연극, 무용, 무대미술, 의상, 소품 등이 융합되었다.

-사회적 문제들을 적나라한 감정으로 표현한 ‘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는 부퍼탈 시립공연장 발레단의 이름을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바꾸었고 기존 무용의 형식과 관습을 깨트렸다. 특히 무용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했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주제로 삼았다. 그녀는 “나는 무용수들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보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라는 말을 남기며 무용수 개개인의 표현력을 중요시했다.

또한 피나는 무용을 통해 사회적 문제들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인간의 폭력성, 정치적 모순 등의 예민한 문제들을 담았다. 그 과정에서 사회 문제들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 고통, 행복, 슬픔 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탄츠테아터를 선보인 ‘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는 낯설고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선보였고 이를 본 관객들은 초반에 크게 당황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혁신적인 무대는 당대의 유명한 연출가와 예술가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하였으며 시간이 점차 흐르자 그녀의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여러 나라의 러브콜을 받았다.

피나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과 ‘소통’이란 주제로 사람들이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녀는 세계 여러 대도시에서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1979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선보였고 이후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번의 내한공연을 했다.

그렇게 평생을 무용을 바탕으로 예술혼을 불태웠던 피나 바우쉬. 2009년 그녀는 안타깝게 암 선고를 받고 불과 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단은 그녀가 안무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어 그녀의 혼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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