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가 되어 버린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 [지식용어]
잿더미가 되어 버린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9.05.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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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이연선] 지난 4월15일, 불타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상징이던 높이 93m의 첨탑이 무너지는 장면은 전 세계로 중계되어 프랑스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하였다.

특히 이 성당은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이자 문화적, 건축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곳이라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으며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가톨릭 성당이다.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며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소설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으로  노트르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의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고딕 건축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건물로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아 착공이 되었다. 그리고 무려149년이 지난 1345년에서야 축성식을 할 수 있었는데 1302년에는 이곳에서 최초의 삼부회(귀족·승려·평민으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가 열렸고 백년전쟁의 와중인 1431년에는 영국의 왕 헨리6세가 프랑스 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잔 다르크가 영국과 친영국파 프랑스 성직자들에 의한 종교재판으로 인해 마녀 혐의로 화형 당했는데 1456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교환청에 의해 명예회복재판이 열려 그녀의 이단 판결과 마녀 혐의가 취소되었고 이를 기리기 위한 잔 다르크의 성녀 성상이 이 성당에 세워졌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기득권들의 대표적인 장소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는 대부분 프랑스 귀족 계층에서 배출되었으며 프랑스 국민들을 괴롭히고 귀족들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었던 고등법원의 관료들 역시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혈견관계가 많았다.

이로 인해 프랑스 혁명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은 개혁 1순위로 공격을 받아 당시 귀족문화와 폐쇄적인 종교문화를 증오했던 시민들에게 많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빅토르 위고가 노르트담 대성당 훼손을 안타깝게 여겨 쓴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소설이 큰 인기를 얻어 재건을 하게 되었고 1804년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소로 쓰이면서 주변이 많이 정리 되었다.

그리고 샤를 드골 장군이나 프랑수아 모리아크,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을 치렀으며 나치 점령기에는 봉인했던 종탑의 종이 1944년 파리 해방의 날에 울려 프랑스인들의 정신이 담긴 장소가 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인들에게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필수코스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매년 1400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찾는 문화유산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성당은 최근 1억5000만 유로(약 1926억원)를 들인 보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어서 이번 화재가 더욱 뼈아프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대성당 화재에 대해 큰 애도를 표하면서 5년 내 복원을 선언했다. 부디 빠른 복구로 예전 모습을 되찾아 프랑스인들과 종교인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다시 그 상징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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