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2 북한의 전후 복구 사업과 사회주의 경제 정책
EP.232 북한의 전후 복구 사업과 사회주의 경제 정책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9.04.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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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북한은 전후 복구와 자립적 민족 경제 확립을 목표로 하여 1954년부터 ‘경제부흥 3개년계획’과 1957년부터 ‘1차 5개년계획’을 중공업과 경공업의 병진 정책을 시행하였다.

1957년 북한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천리마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생산노동에 참여하여 성적이 좋은 사람을 영웅으로 높여 대중의 생산경쟁을 유도하였다. 이를 통해 대중적 영웅주의와 생산에서의 집단 혁신운동을 경제발전의 추동력으로 이용하였다.

1958년에는 3대 혁명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사상, 기술, 문화에서 낡은 유물을 청산하고 공산주의 사상과 기술, 문화를 창조하자는 운동이었다.

또한 1954~1960년까지 북한은 중공업 중심의 경제발전을 꾀하였다. 북한 경제에서 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현재 70%를 넘어서게 되고, 1954~1960년 기간 중 연평균 성장률은 20% 내외의 고속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제철, 기계, 조선, 광업, 전기, 화학 등의 분야에서는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발전하였다.

1953~1958년까지 협동농장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1946년 소위 ‘민주개혁’으로 이루어진 토지재분배는 토지사유를 인정한 것이어서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에 협동농장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이는 소련의 소프호즈와 중국의 인민공사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1단계로는 ‘국가사회주의형’으로 사유토지를 인정하고 작업을 공동화하였다. 2단계로는 ‘반사회주의형’으로 토지를 통합하여 공동경영하고 노동과 토지의 규모에 따라 수확을 분배하였다. 3단계로는 ‘사회주의형’으로 노동의 양에 따라 분배하였다.

북한은 농업협동화와 병행하여 개인수공업과 상업도 협동화를 추진하여 영세한 개인 상공업자를 집단화 시켰다.

그 결과, 한동안은 생산력 증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생산방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개발이 저조해지고 주민의 생산의욕이 감퇴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단점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격하게 보이기 시작하여 생산력이 크게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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