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물류와 방산의 큰 별, 故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시선★피플]
대한민국 물류와 방산의 큰 별, 故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시선★피플]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9.04.1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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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지난 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 소식이 들렸다. 대한항공 측은 조 회장이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알렸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국내 굴지의 물류 그룹인 한진그룹의 수장이자 최근 불거진 불미스러운 갑질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조양호 회장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조양호 회장은 1949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한진그룹의 창업주인 전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하였다. 

그는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에 오르는 등 18년 동안 경영수업을 거친 후 1992년 그룹의 주력 기업인 대한항공의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96년에는 한진그룹 부회장 자리를 거쳐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대한항공 제공)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한진그룹 제공)

그리고 2003년 부친인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2003년부터 한진그룹 경영권을 승계 받아 2대 회장 자리에 올라 최근까지 경영을 해 왔다. 

조 회장은 1990년 모스크바 정기 노선 개설을 필두로 하여 시드니와 상파울루, 베이징 노선 등을 취항하는 등 대한항공이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세운다. 

또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오히려 항공기에 대해 공격적인 투자를 한 결과 거래처인 보잉으로부터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도 유리하게 주선하는 혜택을 얻어 대한항공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조 회장은 넓은 인맥과 실무지식을 통해 2000년대 초반 항공업계의 변화의 흐름을 주도한 글로벌 항공사 동맹체 ‘스카이팀’을 창설하였고 2004년에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항공수송통계 국제항공화물수송 부문 1위를 달성시키기도 하였다.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을 역임했던 조양호 회장(한진그룹 제공)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을 역임했던 조양호 회장(한진그룹 제공)

조 회장의 활동은 물류에서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2004년 6월 제11대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14년 동안 국가가 없으면 방위산업도 없다는 '방산보국(防産報國)'의 가치를 토대로 방위산업 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생산 물량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과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회장의 타계에 가장 크게 비통함을 느끼고 있는 업계가 바로 방산업계일 정도이다. 

평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했던 조양호 회장(연합뉴스 제공)
평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했던 조양호 회장(연합뉴스 제공)

또한 조 회장은 대한민국 스포츠에도 기여도가 높다. 대한체육회의 평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1년 10개월 동안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을 하여 IOC 위원 110명중 약 100명을 만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지지를 호소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결국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물류업계인 대한항공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와 방산 사업 지원으로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조양호 회장. 그러나 조 회장의 업적은 ‘갑질’이라는 단어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지난 2014년 그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일으킨 일명 ‘땅콩회항’사건으로 인해 조 회장 일가가 갑질 논란에 휩싸이게 되어 재벌가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 후 잠잠한 가 싶더니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일어났고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역시 운전기사나 가정부, 직원들에게 욕설과 폭행을 저지른 '갑질 폭행'논란이 일어났다. 

2014년 '땅콩회항'사건 당시 기자회견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조양호 회장(연합뉴스 제공)
2014년 '땅콩회항'사건 당시 기자회견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조양호 회장(연합뉴스 제공)

이런 일련의 갑질 논란들은 조 회장 일가, 특히 조 회장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20년 만에 대표직을 잃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일련의 오너리스크가 스트레스가 되어 병세를 악화시켰고 폐질환으로 향년 70세에 타계했다.  

조양호 회장 빈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양호 회장 빈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비록 일가의 일탈행위를 막지 못해 숱한 수모를 겪었지만 조양호 회장의 대한민국 물류와 방산, 스포츠 역사에 획을 그은 업적은 인정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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