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최지민] 할리우드의 사랑받는 여배우이자, 사랑과 헌신의 아이콘 오드리 헵번. 그런 그녀가 2차 대전 중 거주지인 네덜란드에서 연합군을 숨겨주고 탈출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레지스탕스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의 작가 로버트 마첸이 '네덜란드 소녀:오드리 헵번과 2차 대전'이라는 책을 통해 헵번이 레지스탕스 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레지스탕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점령에 저항하여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일어난 지하운동 및 단체)

1. 레지스탕스에서도 여주인공(heroine)이었던 오드리 헵번

로버트 마첸의 '오드리 헵번과 2차 대전' (더타임스)
로버트 마첸의 '오드리 헵번과 2차 대전' (더타임스)

1942~45년, 2차 대전 기간 / 모친과 함께 펠프라는 마을에 살았던 헵번. 아른헴 전투 이후 네덜란드의 저명한 레지스탕스 지도자인 헨드릭 피세 후프트 박사 밑에서 레지스탕스 회보를 배포하고 고립된 연합군 공수부대원들을 도움.

아른헴에서 발레리나 수업을 받고 있던 헵번은 당시 10대 소녀였지만 후프트 박사의 심부름을 도우며 레지스탕스 활동 모금을 위해 비밀 모임에서 춤을 추기도 함.

1944년 9월 / 엽합군이 라인강 루트 확보를 위해 시도했던 대규모 공중 침투 작전인 ‘마켓 가든’이 실패로 돌아간 후 적진에 고립된 공수부대원을 안전지대로 인도, 이들에게 음식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음.

2. “위험했으나 스릴 넘쳤던 일”

[지식의 창] 스크린보다 아프리카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던 ‘오드리 헵번’ [시선뉴스] 방송캡쳐 / 시선뉴스DB
[지식의 창] 스크린보다 아프리카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던 ‘오드리 헵번’ [시선뉴스] 방송캡쳐 / 시선뉴스DB

당시 공수부대원은 헵번의 집에 약 1주일간 머물렀으며 이후 레지스탕스의 안내로 독일군 점령지를 빠져나갔던 일이 있다. 이때 헵번은 이들에게 모친이 주는 음식과 샴페인을 날랐다.

헵번은 이후 아들인 도티(49)에게 당시 연합군 공수부대원을 돕는 것이 위험했지만 스릴 넘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공포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만약 연합군을 도운 사실이 드러날 경우 가족 모두가 처형당할 수 있었기 때문.

3. 훗날 스타가 된 헵번은 이러한 사실을 감추길 원했다

[지식의 창] 스크린보다 아프리카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던 ‘오드리 헵번’ [시선뉴스] 방송캡쳐 / 시선뉴스DB
[지식의 창] 스크린보다 아프리카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던 ‘오드리 헵번’ [시선뉴스] 방송캡쳐 / 시선뉴스DB

그녀의 부모는 초창기 나치 지지자였는데 1935년 뮌헨에서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이후 모친은 나치즘 활동에서 금방 빠져나왔지만 부친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에게 부친의 나치 활동은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녀의 경력에 영향을 받을까 우려해 스타가 된 후 인터뷰를 꺼리며 가족사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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