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1946년 4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개칭되어 서울에 본부를 둔 ‘조선공산당’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조직이 되었다.

1946년 6월 24일 노동법령,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을 시행한 이후 ‘중요산업 국유화법령(1946. 08. 10)을 발표하여 일본인 흑인 민족반역자가 소유하던 기업소, 광산, 산림, 어장, 발전소, 철도, 운소, 체신, 은행, 상업, 문화관계 산업 등을 국유화시켰다. 이는 전체 산업의 90%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소규모의 개인 수공업과 상업은 자유로운 소유와 기업활동이 허용되었다. 그 결과 국영기업이 전체 공업의 72.4%를 차지하게 되었고 개인 기업은 23.2%에 불과하게 되었다.

1946년 9월 28일 북조선공산당은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대중정당으로 성격을 바꿔 조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게 된다. 그리고 1946년 11월 3일 시행되었던 인민위원회선거에 기초하여 1947년 2월 17일 북조선 최고주권기관으로서 ‘북조선인민회의’를 창설하였다. 북조선인민회의는 제1차 회의에서 중앙정권기관으로서의 북한의 첫 프롤레타이아독재정권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했다(1947. 2. 22)

1948년 2월 8일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과 만주항일 빨치산부대를 바탕으로 조선인민군을 창설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여 1948년 9월 9일 김일성(북로당)을 수상으로,박현영(남로당), 홍명희(민주독립당), 김책(북로당)을 부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그리고 북한은 1948년 10월 12일 소련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몽고,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과 외교관계를 설정했고 이듬해에는 중국 및 베트남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동시에 북한의 참가를 거부한 채 유엔한국위원단을 새로이 구성하고자 한 유엔의 결정을 비난하기도 하였다.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1949년 3월 17일 조·소경제문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이에 의거하여 양국간에는 상품유통, 차관, 기술원조, 문화교류 등에 관한 세부협정들이 맺어지게 되었는데 기계 및 기계부속품과 원유, 콕스탄 등의 수입과 금속 및 화학제품 등의 수출에 관한 조·소 무역문제, 초과수입품 대금결제를 위한 2억 1,200만 루블에 달하는 소련으로부터의 차관문제, 소련기술자의 대우문제, 유학생 및 연구생들의 소련 파견문제 등이 합의되었다.

북한은 이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2개년 경제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고 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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