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여행] 하얼빈 역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다시 한번 ‘코레아 우라!’ [중국 하얼빈]
[SN여행] 하얼빈 역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다시 한번 ‘코레아 우라!’ [중국 하얼빈]
  • 보도본부 | 최지민 pro
  • 승인 2019.04.0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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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코리아 해외편-중국 하얼빈을 이야기하다.

[시선뉴스(중국 하얼빈)] 중국 하얼빈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를 자연스레 떠올릴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아침 하얼빈역에서 일본 초대 총리와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을 지낸 거물이자 한반도와 만주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세 발의 총탄을 날렸다.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바로 그곳 하얼빈 역에 있다.

하얼빈역 전경(좌) 및 기념관 가는 통로(우) [연합뉴스제공]
하얼빈역 전경(좌) 및 기념관 가는 통로(우) [연합뉴스제공]

최근 하얼빈역 확장공사로 인해 인근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임시 이전했던 기념관은 약 2년 만인 지난달 30일 다시 원래의 자리인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안중근기념관 입구(좌)와 현판(우) [연합뉴스제공]
안중근기념관 입구(좌)와 현판(우) [연합뉴스제공]

기념관은 하얼빈역 남(南)광장측 역사를 정면에서 봤을 때 주 출입구 왼쪽 측면에 자리를 잡았다. 역사 정면에는 기념관 위치를 알려주는 별도 표시가 없어 찾기가 쉽지 않지만 기념관 내부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한 상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곳곳에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진다.

하얼빈역 안중근기념관의 안 의사 동상 [연합뉴스제공]
하얼빈역 안중근기념관의 안 의사 동상 [연합뉴스제공]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의 전신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안중근 의사는 오른손에 모자를 든 채 주먹을 쥐고 있었고, 잘려나간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의 단지(斷指)도 그대로 표현돼있다.

측면에서 바라본 안 의사 동상(좌) 및 동상 맞은편(우) [연합뉴스제공]
측면에서 바라본 안 의사 동상(좌) 및 동상 맞은편(우) [연합뉴스제공]

동상 위에는 거사 시각인 9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 모양 조형물이 있고, 안중근 의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는 세 개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에게 세 발의 총탄을 쏜 것을 의미한다고 기념관 측은 설명했다.

동상을 지나면 본격적인 전시공간이 나오는데, 전시관은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 구국 계몽운동, 의병투쟁, 하얼빈 의거, 법정투쟁, 유언, 평가 등의 순서로 구성돼 있다.

플랫폼에 복원된 현판(좌) 및 저격지점 표시(우) [연합뉴스제공]
플랫폼에 복원된 현판(좌) 및 저격지점 표시(우) [연합뉴스제공]

전시관의 한쪽 끝 지점의 창밖을 보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역 1번 플랫폼이 보이는데 그곳에는 '안중근 격살 이등박문 사건 발생지' 현판과 암살 당시 안중근 의사와 이토가 있던 지점을 뜻하는 삼각형과 사각형이 각각 복원돼 있다.

플랫폼 바닥에 복원된 저격지점 표시 [연합뉴스제공]
플랫폼 바닥에 복원된 저격지점 표시 [연합뉴스제공]

삼각형 안에 있는 별 7개는 안 의사(안응칠)를 뜻하고, 사각형 내 동심원 3개는 세발의 총성을 뜻한다는 것이 기념관 측 설명이다.

이 밖에도 전시관 곳곳에는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삼각형과 일곱 개의 별 등이 표시돼있다.

2014년 역사 내에 기념관이 들어선 이후 2015, 2016년에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이 거사일에 맞춰 이곳에서 추모식을 한 바 있다. 오는 10월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 행사를 기념관에서 열 수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기념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

*시선뉴스에서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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