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여행] 구한말 격동의 현장 ‘덕수궁’...애잔함이 서린 아름다움 [서울 중구]
[SN여행] 구한말 격동의 현장 ‘덕수궁’...애잔함이 서린 아름다움 [서울 중구]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19.04.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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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서울 중구)] 각 국가의 궁궐을 여행하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는 물론 건축방식, 시대의 변천사 등 다양한 요소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의미 있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답고 특유의 의미가 깊게 베인 다양한 궁궐을 만날 수 있다. 그중 혼란과 격동의 구한말(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까지의 시기) 역사가 담긴 ‘덕수궁’도 가치 있는 궁궐로 손꼽힌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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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덕수궁이 지금의 이름을 갖기까지에는 조선말 격동의 역사를 담겼다. 본래 덕수궁은 궁궐로 사용되기 이전에 월산대군의 집터였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 거처 장소로 이용되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렸다. 그 후 광해군 때에는 ‘경운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후 경운궁을 이용하면서 ‘덕수궁’으로 최종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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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덕수궁의 이름에는 고종에 대한 연민과 충성심이 담겨 있다. 바로 “고종의 상수를 빈다”는 의미로 德 壽 宮(덕수궁)이라 명명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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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는 조선말 당시 사용되었던 다양한 시설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특히 고종이 거처를 옮긴 후부터 사용된 다양한 장소가 눈에 띄는데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시던 정관헌부터, 석어당, 함녕전, 석조전 등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이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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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또 한 가지 특별한 점. 조선말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시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덕수궁 내에는 다양한 서양 건축물이 곳곳에 있어 구한말 당시 양국의 건축양식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부분에 있어 가치를 일찍이 인정받은 덕수궁은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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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사건의 장소였던 덕수궁. 심지어 일제 침략과 6.25 전쟁으로 인해 훼손되고 불에 타는 등 대한민국의 희로애락 모두가 담겨있기에 덕수궁을 바라보면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어떤 서정적 감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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