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창] 덕률풍에서 스마트폰으로 오기까지, 어떻게 변했나?
[지식의 창] 덕률풍에서 스마트폰으로 오기까지, 어떻게 변했나?
  • 보도본부 | 한성현 PD
  • 승인 2019.03.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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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NA▶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진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도 잡고 있는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지 오래 입니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전화기 한 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사용했던 귀한 물건이었지만 통신 시설의 확충과 전화자동화 등의 기술 진전으로 현재는 이동전화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통신 강국으로 성장해 온! 전화기의 변천 과정을 알아봅니다.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MC MENT▶
한국에 전화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 그러나 본격적으로 설치, 운영된 것은 1898년입니다. 이때는 텔레폰(Telephone)을 음차해 덕률풍이라고 불렀죠.

최초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진 것은 1896년 궁 내부인데,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다,우리의 전화 통신 산업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변화가 생깁니다.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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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내 모든 전화 사업권은 일본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통신망이 확대되죠. 하지만 한반도 내 일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만 사용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사용 기회가 거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45년 광복 후! 드디어 모든 통신 사업 주도권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1950년 6·25 전쟁의 여파로 한반도 내 모든 통신망이 대파되게 됩니다.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MC MENT▶
1950년대에는 6·25전쟁으로 훼손된 통신 시설을 복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훼손된 통신망을 복구하고 근대식 통신 시설로 바꾸기 위해 외국 기술자를 초청하기도 했죠. 그 결과 서울 중앙전화국 서국은 자동식 8천 5백 회선을, 대전전화국은 공전식 3천 회선을 복구, 개설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통신 시설은 황금기를 맞기 시작합니다.

◀NA▶
1960~70년대. 경제 성장, 소득 증대에 따라 전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통신 시설이 확장되었고, 통화 제도 및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서울 광화문, 동대문, 성북, 신촌, 부산 초량의 새 회선 개통, 영등포, 인천의 자동전화 개통 등 통신 시설이 대폭 확충됩니다.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출처_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전국적으로 전화 수요가 늘면서 전화를 거는 횟수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는 전화도수제가 도입되고, 시외통화 번호가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폭증하는 시외전화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시외통화를 장거리 자동전화(DDD)방식으로 전환하는데요. 1971년 서울~부산 간 장거리 자동전화가 개통되면서 전국 전화자동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

◀MC MENT▶
1980년대에는 농촌까지도 전화 자동화와 통화권 광역화가 이루어지고, 1천만 전화 회선이 공급되어 통신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약 1인 1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로 전화기는 생활필수품으로 대중화를 이루게 된 겁니다. 덕률풍에서 스마트폰 시대가 오기까지. 대중화를 이룬 전화기가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모아집니다.

제작진 소개
책임프로듀서 : 한성현 / 구성 : 박진아 / CG : 이연선 /  연출 : 홍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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